북리뷰 존버씨의 죽음 by 김영선
갈아넣고 쥐어짜고 태우는 일터는 어떻게 사회적 살인의 장소가 되는가?
윤석열 정부의 개노답 주69시간 근무시간제를 맞이한 한국인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
책이 쓰인 목적성이 뚜렷하고 그 해결방안 또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책의 목적은 현대 한국사회에 만연한 과로죽음(과로사 및 과로자살)에는 "과로" 라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으며 이것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성과중심체제의 현대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법제도, 기업, 개인, 문화측면에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므로 시간이 없다면 첫장과 마지막 장만 읽어도 괜찮다고 본다.
과로와 죽음과의 거리는 멀고도 가까운데, 왜냐하면 과로로 인한 죽음이 명백해 보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과로에 익숙해져버린 사회적 이데올로기 때문에 이 둘의 연관관계가 정치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과로로 유발된 우울증이 과로죽음의 개별화에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 과로와 죽음간의 연결고리를 밝히는 일이 상당히 요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로사는 만연하다. 너무나 만연한 것이 문제다. 무엇보다 열받는 지점은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구성원이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논리를 대변하는 인간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들은 과로를 당연시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를 묵살한다. '의지가 약해서', '나때는 말이야', '근성이 없어서' 등의 말로 노동의 불합리한 구조적 원인을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로 치환해 버린다. 우스운 점은 이런 말을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 또한 노동자라는 점이다. 그저 죽어가는 이들보다 조금 더 안전한 지대에 있다는 점이 다를 뿐. 어리석고 이기적인 그들에게 마르틴 니묄러 목사의 다음 시를 바치고 싶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사회민주당원들을 가두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민주당원이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그 다음에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마지막 장에서 과로죽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의 하나로 소비지향주의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 부분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더 더 더 일하는 것,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 보면 그 끝은 더 더 더 많은 소비를 조장하고 추구하는 소비지향주의 문화에 있다. 사회구조 차원에서의 법제도화와 기업문화 개선 또한 이런 문제해결의 핵심이지만 현대의 미친 듯한 소비지향주의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과로죽음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