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중독으로 가는 길 9

(북리뷰)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 책이 흥하게 된 데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목이 9할은 한 것 같다. ★★★★☆ 책을 읽은 지 백만년이 지나... 기억과 감흥이 꽤나 풍화되었지만 금요일 오후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독후감을 써본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책의 6부 '대장정'과 7부 '카레닌의 미소'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뜯어버린 후 가장 애정하는 책장 목록에 넣어 놓고 싶다. 6부 대장정을 읽기 전까진 '이 (쓰레기 같은)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는가'하는, 재미도 없고 공감도 가지 않는 책을 읽을때 늘상 하던 번뇌와 짜증을 안고 꾸역 꾸역 책장을 넘겼는데 덕분에 진도도 매우매우 더디게 나갔었다. 하지만 고생끝에 낙이 오리니, 6부를 여는 순간 드디어 공감과 사유라는 것을 할 수 있는 문장의 등장이 어찌나 반..

북리뷰 그대 눈동자에 건배 (저자: 히가시노게이고)

모 영화가 생각나는 제목이나, 내용은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 이것은 절대로 일하기가 싫어 적는 글이 아니다. 일본 소설은 모종의 고집으로 인해 일부러라도 안 읽는 편인데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됐다. 여러 장르의 단편 소설 모음집이고, 역시나 친구가 추천했던 '렌탈 베이비' 가 제일 재밌었다. 아무래도 소재 때문일까? 임신 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 한 언제까지고 죽을때까지 그 가능성을 놓지 못하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하기엔 약간의 유쾌함을 가미한 해당 소설을 왜곡하는 것이겠지만 어쨌든 나한테는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단편이었다. 그 다음으로 인상에 남는 건 '10년 만의 밸런타인데이'. '고장난 시계'는 좀 짜증이 났는데 줄줄이 꼬리를 무는 설명과 사유에 살짝 코니윌리스가 떠올랐다. ..

북리뷰 짱깨주의의 탄생 by 김희교

짱깨주의의 탄생 - 누구나 함부로 말하는 중국, 아무도 말하지 않는 중국 ★★★★☆ 왜 추천했는지 알것 같은 책. 차별이 만연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처럼 중국에 대한 너무나도 편향된 시각에 매몰되어 그것의 치우쳐져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살았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은 목차부터 굉장히 흥미로운데 특히나 '10부 한국 언론의 짱깨주의적 보도 테크닉'을 훑어보면 제목만으로도 얼마나 우리가 언론에 놀아났는지 눈에 보여 머쓱한 웃음이 터져나온다. 유일한 단점을 꼽자면 두껍고 무겁다는 것 ... 흥미로운 목차와는 별개로 많은 내용이 담겨있다보니 책장이 쉬이 넘어가지 않을 뿐더러 일단 기본적으로 600페이지가 넘어갈 정도로 양이 많고 방대하다. 한번 슥 읽고 넘어갈 책이 아니어서 평소보다 인용이..

북리뷰 가녀장의 시대 by 이슬아

가녀장의 시대 진짜 너무 재밌다! 다들 읽었으면 두번 세번 백번 읽었으면! ★★★★☆ 전복적이면서도 가볍고 과감하면서도 재미있는 소설. 아니 무엇보다 너무 재밌다. 재밌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제목에서 짐작가다 시피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가부장제를 살짝 비틀어 父가 있어야 할 자리에 女, 즉 딸을 집어 넣어 전개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 사실, 주인공 이슬아와 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것은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문득 이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만약 아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가족 형태였다면 ? 재미있지 않다. 아니, 우린 너무 아들만을 숭배하고 쩔쩔매는 가족 형태를 익숙히 봐 왔다. 그것은 차기 가부장을 떠받드는 형태로 가부장제 그자체이며 예로부터 끊임..

북리뷰 아주 편안한 죽음 by 시몬 드 보부아르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시몬 드 보부아르의 기록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모든 것이 영원할 것이라 속삭이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의 죽음마저도 결코 오지 않을 그 무엇인가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착각. 그렇다. 그래서 어느 순간 죽음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우린 소스라치게 놀라고, 부정과 분노의 단계를 거쳐 몰아치는 후회의 파도에 잠식된다. 사실, 30살이 넘어선 어느 순간부터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죽음이다. 잠자다가 죽는 삶. 고통없이 내쉬는 숨결 한번에 떠나는 삶. 무엇보다도 이루기 어려운 것, 진부한 표현을 빌리자면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있는 그 끝이, 사실 내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내 소망이다. 책에서 보부아르는 말한다. 어머니와 자신은 삶을 사랑했..

북리뷰 존버씨의 죽음 by 김영선

갈아넣고 쥐어짜고 태우는 일터는 어떻게 사회적 살인의 장소가 되는가? 윤석열 정부의 개노답 주69시간 근무시간제를 맞이한 한국인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 책이 쓰인 목적성이 뚜렷하고 그 해결방안 또한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책의 목적은 현대 한국사회에 만연한 과로죽음(과로사 및 과로자살)에는 "과로" 라는 구조적인 원인이 있으며 이것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성과중심체제의 현대 사회구조를 바꾸는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법제도, 기업, 개인, 문화측면에서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므로 시간이 없다면 첫장과 마지막 장만 읽어도 괜찮다고 본다. 과로와 죽음과의 거리는 멀고도 가까운데, 왜냐하면 과로로 인한 죽음이 명백해 보이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과로에 익숙해져버린 사회적 ..

북리뷰 여자아이 기억 by 아니 에르노

아니에르노 저서 여자아이 기억에 대한 독후감. ★★★★☆ 얼마 전 '단순한 열정'을 읽었을 때도 느꼈는데, 아니 에르노의 작품은 내가 쓴 일기장을 다시 읽어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느낌은 그의 작품을 자꾸 읽고 싶게 만드는 동시에 나 혼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유성을 깨뜨리고, 사실 그것은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저 인간이면 겪는, 어떤 보편적이고도 흔한 것이었다는 충격을 안겨 준다. '여자아이 기억', Memoire de fille는 아니 에르노가 1958년과 1960사이 겪었던, 자신의 삶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던 그런 사건들에 대해 적은 글이다. 독특한 점은 일반적인 회고록이나 자서전과는 다르게 그가 과거의 자신을 마치 타자를 바라보듯이 적어 나갔다는 점인데 이것 또한 내가 일기를 쓸 때마다..

북리뷰 계산된 삶 (저자: 앤 차녹)

근미래 SF 오피스 소설 계산된 삶에 대한 독후감. 업그레이드 된 신인류가 사용되는 곳이 고작 사무실이라니... ★★☆☆☆ 솔직히 내가 뭘 읽은 건지 모르겠다... 제목이 재미있어 보이길래 가져왔는데 생각보다 그냥 그랬다. 내용이 약간 잔잔하기도 하고... 앞에 오피스물이라고 되어 있어서 오피스물이 대체 뭐지? 했는데 사무실 배경으로 이루어져서 오피스물이구나 싶었다. 내용은 결말 정도 약간 참신하지만 나머지는 꽤 평이한 수준이다. 그래서 자기전에 책 읽으면 잠도 잘왔다. 책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음) 책 속 사회는 철저한 계급사회로 그들은 계급에 따라 사는 구역도 나뉘어져 있다. 최상위 계층은 바이오닉으로 전통적으로 태어난 인간 유기체에 인지 임플란트를 심어서 두뇌활동을 뛰어..

북리뷰 아니에르노 단순한 열정 simple passion

노벨문학상 수상자 아니 에르노 저서 단순한 열정 독후감. 매번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글이 가진 보편성이란 너무나도 놀랍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나와는 확연히 다른 환경과 시간에서 나와는 다른 경험을 하고 자랐을 것이 분명한 작가가 써낸 글이 나에게 울림을 준다는 것은 정말 너무 신기한 일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이것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던 인간 그 자체에 내재된 보편성은 시대나 문화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에서 아니 에르노가 느낀 열정은 너무나도 강렬하고 처절하지만 이러한 감정의 근원적 관계가 불륜이라는 것은 나에게 오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사회적으로 공인되지 못한 관계였기에 그가 이토록 불타올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왜, 적당히 반대되는 역경..